냉장고 혼자 옮기려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대형가전은 무게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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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냉장고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오래 쓰기도 했고 성에도 심하게 끼는 데다, 냉장고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 때문에 세탁실과 주방 쪽 동선도 꽤 불편했습니다.

폐가전 무료수거를 예약해두고 나니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기사님이 오셨을 때 냉장고를 꺼내기 어렵다고 하면 어떡하지?

어디선가 설치된 자리에서 빼내기 어려우면 수거가 곤란할 수도 있다는 후기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집 밖까지 내놓는 건 도저히 못 하겠고, 적어도 기사님이 가져가기 편한 곳까지만 옮겨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생각한 ‘조금만 옮기기’가 조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중형 냉장고니까 혼자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냉장고 크기와 무게를 대충 보고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나도 칠 수 있겠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헬스도 해본 적 없으면서 냉장고 무게를 보고 중량을 판단했습니다.

냉장고는 운동기구처럼 잡기 좋은 손잡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게중심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밀고 당기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습니다.

장판이 찍힐까 봐 피자박스까지 깔았습니다

바닥이 찍히거나 긁힐까 봐 집에 있던 피자박스를 펴서 냉장고 아래에 깔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준비를 꽤 했습니다.

목장갑도 끼고, 이동할 길도 머릿속으로 먼저 그려봤습니다.

집 구조상 세탁실에서 바로 주방으로 나오는 길이 아니라, 세탁실 베란다와 야외 테라스를 거쳐 앞베란다로 돌아온 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냉장고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냉장고를 눕혀서 끌기 시작했습니다

세워진 상태로는 잘 움직이지 않아서 결국 냉장고를 눕혔습니다.

그리고 바닥에서 조금씩 밀고 당기면서 부엌 쪽까지 빼냈습니다.

여기까지는 힘들어도 어떻게든 됐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눕힌 냉장고를 다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냉장고 문을 열고 당겨볼까 생각했는데, 이건 문짝부터 망가뜨릴 것 같아 바로 포기했습니다.

그러고는 냉장고 아래를 정말 조금씩 들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mm씩 올리고 플라스틱 파일첩을 밑에 끼웠습니다

집에서 안 쓰던 플라스틱 파일첩 같은 걸 냉장고 밑으로 조금씩 밀어 넣었습니다.

한 번에 들 힘은 없으니 아주 조금 띄우고 받치고, 또 조금 띄우고 받치는 식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생길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과정도 꽤 위험했습니다.

무거운 물건 아래에 손을 넣는 건 받침이 미끄러지거나 깨지는 순간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때는 냉장고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장고 윗부분을 잡았습니다.

말 그대로 냉장고 머리끄댕이를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처음 눕힐 때는 냉장고에 깔릴 뻔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남편에게 했더니 혼났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습니다.

처음 냉장고를 눕히는 과정에서 무게가 갑자기 쏠리면서 저한테 넘어올 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러브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계속 저리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작은 강아지가 발밑에 있었다면 더 위험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운 좋게 다치지 않았지만, 냉장고처럼 무겁고 중심을 잡기 어려운 가전은 혼자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엘리베이터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현관 밖까지 이동하는 장면도 한번 시뮬레이션해봤습니다.

엘리베이터까진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동현관으로 가는 길에 내리막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습니다.

냉장고가 경사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제가 멈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처럼 냉장고가 사람을 덮치고 그대로 유리문까지 밀고 나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거기까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장고는 옮겼고 근육통은 며칠 동안 남았습니다

냉장고를 옮긴 뒤에는 가슴 윗부분부터 어깨, 팔뚝, 손목까지 근육이 뭉쳤습니다.

일요일쯤 옮겼는데 목요일까지도 근육통이 남아 있었습니다.

손가락만 멀쩡했습니다.

둘째에게 팔에 알통 생겼다고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헬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 느낌인가 싶었습니다.

물론 냉장고를 옮기는 건 운동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운동은 자세와 중량을 조절할 수 있지만, 냉장고는 크고 무겁고 잡을 곳도 애매해서 몸에 걸리는 부담이 훨씬 불규칙했습니다.

대형가전은 무게 숫자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됐습니다

이번에 제일 크게 배운 건 이거였습니다.

냉장고가 몇 kg인지 보고 ‘이 정도면 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냉장고를 집 안에서 옮기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습니다.

문턱이 있고, 방향을 틀어야 하고, 바닥이 미끄럽거나 경사가 있으면 난이도는 더 올라갑니다.

무엇보다 냉장고가 한 번 기울었을 때 그 무게를 다시 잡아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저는 결국 기사님이 가져가기 편하도록 집 안쪽까지는 옮겨뒀지만, 다시 하라면 혼자 하지 않을 겁니다.

대형가전을 버리기 전에 이동이 필요하다면 수거 조건을 먼저 확인하고, 혼자 무리해서 옮기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냉장고는 버렸고, 자리도 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가지를 확실히 배웠습니다.

냉장고 무게를 보고 헬스 중량처럼 판단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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